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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파리의 장소

파리의 길을 걷다보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파리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역사, 문화, 사회, 미술, 음악, 건축 등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산책을 즐길 수 있는 흔적들이 곳곳에 있고 그런 장소에서 느끼는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공간에 기억이 쌓이면 세월이 흐른 후 그 기억과 연관된 바로 그 장소가 생각나듯, 도시는, 파리는, 장소에 따라 산책하는 사람의 기억에 따라 달라 보입니다. 단 몇 걸음만으로도 공원과 작은 광장, 노천카페와 야외벤치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파리의 구석구석을 천천히 걸어보고 음미할 때 도시의 풍경이,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이, 그림처럼 또는 사진처럼 우리 눈에 들어옵니다.

croquis 1
place de la Contrescarpe, paris, 미백지 위 색연필,수성펜, 28cmx21cm , 스케치:집짓는 건축가
croquis 2
Fg. du Temple, paris, 미백지 위 수성펜, 18cmx12cm, 스케치:집짓는 건축가

 

빼꼼히 열린 대문 사이로 보이는 조그만 안뜰, 옛 건물의 흔적을 보여주는 벽면의 부조(relief), 고인이 된 작가의 집을 알리는 안내판, 건축가의 이름을 새겨놓은 현판 그리고 아내가 유난히 좋아하던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햇살 등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인상파 화가들의 표현처럼 빛의 유희를 화폭에 옮겨 담은 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빛의 방향에 가로변 건물파사드의 입체적인 변화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도시의 흔적을 볼 줄 아는 눈을 갖는 것은 어쩌면 사소한 발견에서도 즐거움을 알아가는 느림의 미학인 것 같습니다.

facade 1
어느 맑은 날, 12:40, paris, 사진:집짓는 건축가
facade 2
흐린 그 다음날, 12:40, paris, 사진:집짓는 건축가

 

작가 헤밍웨이는 “파리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은 영원히 가슴속에 파리를 안고 살아갈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파리에서 잠시 생활했던 이방인의 눈에 파리는... 콕 집어서 말할 수 없는 뭔가 알 수 없는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상의 기쁨과 평온함, 형언할 수 없는 멜랑꼴리한 감정까지도 파리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건축학교 졸업 후 팡떼옹(Panthéon)과 노트르담(Notre-Dame)성당이 앞뒤로 보이는 건축사무실에 근무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동료들과 점심식사를 마치고 잠깐 산책할 때, 길과 길이 만나는 식당 앞 모퉁이 작은 삼각형모양의 광장(?)을 발견했습니다. 식당의 야외테라스로 점유 중이었던, 나무그늘 아래 담소를 나누며 식사중인 사람들의 얼굴에서 느긋한 여유가 느껴졌습니다. 걷다가 우연찮게 알게 되었던 골목길에 있는 작은 광장의 분위기에 취해 와인한잔 하고 싶었던 장소입니다. 노트르담의 장미창이 살짝 보이는 골목길 식당 앞 작은 광장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영화의 한 장면으로 나왔을 때 무척 반가웠습니다. 영화감독의 눈에도 매력적인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파리산책의 묘미는, 잘 알려지지 않은 조용하고 한적한 그런 곳의 발견이기도 합니다.
 

lieu
좌:팡떼옹 / 우:노트르담, 사진:집짓는 건축가
bucherie 1
rue de la bucherie, paris, 사진:집짓는 건축가
bucherie 2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paris, 출처: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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