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망졸망 박공지붕이 모여 있고 더 이상 쓰임이 없는 철길의 흔적, 옛 포도주 저장고와 레스토랑의 유전자를 그대로 이어받은 것 같은, 파리 동쪽 12구의 Bercy Village입니다.
예전의 Bercy 지역은 센강을 통해 프랑스 각 지역에서 올라오는 포도주가 모이는 “파리의 와인창고”라 불리던 곳이었습니다. 와인을 중심으로 커다란 상권이 존재하고 다양한 레스토랑과 술집이 넘쳐났던 장소로도 유명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흘러 배를 이용한 화물수송보다는 육로, 도로를 이용한 운송의 편의성과 경제적 측면에서 얻어지는 장점으로 인해 Bercy 지역은 경쟁력을 상실하고 마침내 대부분의 와인창고가 문을 닫게 됩니다.
그렇게 잊혀졌던 Bercy 지역은 20세기에 들어와 도시재생사업으로 주거단지와 공원이 조성되면서 파리시민에게 또 하나의 휴식공간을 제공하게 됩니다. 동시에 주변에 방치된 와인창고들을 개조, 옛 정취가 묻어나는 과거를 기억할 수 있는 장소로 거듭나며 상점가와 식당가를 조성, 예전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장소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Bercy Village(벡시 빌라주)라는 이름으로.
파리 지하철 14호선의 Cour Saint-Emilion역에 내리면 Bercy Village의 입구에 해당하는 박공지붕이 눈에 띄는데, 과거에 와인창고였음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파리 시청 앞 키스’로 유명한 사진작가 Robert Doisneau의 와인창고 풍경을 촬영한 사진도 전시가 되었던 공간입니다.
곧이어 안쪽으로 좌우 약 200m거리의 시끌벅적한 식당가가 펼쳐집니다. 그 길을 따라 계절과 주제에 따라 바뀌는 차광막(sun shade), 풍선, 우산, 채색된 천, 나무덩쿨 등 일종의 설치미술 같은 다양한 이벤트로 방문객의 오감을 자극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매일이 축제인 동네입니다. 또한 보행자 길에 남겨져있는 철길의 흔적에서 파리는 자신들의 기억이 남아있는 장소를 소중히 여기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는, 보존과 개발에 있어서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 생각합니다.
센 강을 등지고 서있는 영화관 방향으로 걷다보면 보행자길 양쪽으로 줄지어 서있는 박공지붕 건물들의 모습에서 옛 와인창고의 향기가 묻어납니다.
이 글을 쓰면서, 당시에 영화공부를 시작했던 아내와 무제한 UGC카드로 열심히 영화보러 다녔던, 그때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무제한 UGC카드는 1회 관람비용을 생각하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름 쏠쏠한 혜택이지만 일반인들은 매달 꾸준히 세편이상 영화관람은... 잘 안됩니다. 가장 큰 원인은, 새로운 영화가 매달 세편이상 상영되는 것이 아니라는 현실적인 이유로 처음 생각처럼 발걸음이 자주 영화관으로 향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가능하면 Bercy의 영화관을 찾았던 것은 공원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며 한가한 오후를 보낼 수 있으며 영화관람 후 식사와 와인을 즐길 수 있는 도심 속 아늑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파리는 낭만의 도시가 맞습니다.
영화관(UGC Ciné Cité Bercy)
UGC illimité(무제한 UGC)
21.90€/월(1인) = 약 3만원
36.80€/월(2인) = 약 5만원
8€(1회) = 약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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